<80세 넘어 아프리카를 가다>
잠비아?보츠와나?남아공 등 5國, 버킷리스트 마침표
동반자?날씨?컨디션?인솔자 등 4C(네 조건) 大 만족
작성자: 권오덕
수필가(2010-한국문학시대)/전 대전일보 주필
산문집 “코로나가 내게 준 선물‘ 외
벼르고 벼르던 아프리카 여행을 마침내 해냈다. 나의 버킷리스트 마지막 단추를 끼운 셈으로,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나는 50년간 65국을 다녔지만 못 가본곳이 많다.
쿠바?브라질 등 중남미와 태평양의 많은 섬들,알래스카?아이슬란드 등은 꼭 가보고 싶었다. 북극과 남극의 환상적인 오로라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젠 틀렸다. 체력과 재력이 바닥나 이번 아프리카가 마지막이다.
80 넘은 친구 세 부부 6명이 아프리카로 떠난 건 늦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9월 초였다.
엄청 무더울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상하(常夏)의 이 대륙은 뜻밖에도 초여름날씨로 우리를 맞았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겨울을 막 지난 초봄 날씨였다. 되려 추워서 패딩을 꺼내 입어야 했다.
전례 없이 무더웠던 한국을 떠나 피서를 떠난 셈이 됐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을 터이다.
아프리카 여행이 무슨 큰 자랑거리냐고 비아냥대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이나이에 다녀온 게 무척 대견스럽다.
나뿐만 아니라 일행 대부분 그럴 것이다. 다른 여행과는 달리 거리가 멀고 기후가 우리나라와 달라 은근히 걱정이 됐다.
비행기를 무려 7번이나 바꿔타고 총 45-6시간 비행해야 했으니 더욱 그렇다.
배?자동차와 달리 비행기멀미를 하지 않는 나로선 특이한 체질 덕을 봤다.
이번 여행은 출발 100일 전에 결정했지만, 자식들에겐 숨겼다.
잔금을 치른 후 출발 20일 전에야 알렸다. ”아빠 엄마 아프리카 여행 갈 테니 추석 때 너희들도 각자 여행 갈 수 있으면 가라“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
”아빠 엄마 연세에 그 위험한 곳에 어떻게 가시려 하느냐“며 펄쩍 뛰었다. 자식들 모두 삐쳐서 말도 않더니
출발 며칠 전 봉투를 내밀며 ”잘 다녀오시라“고 허락했다.
일반적으로 좋은 여행의 조건으로 4S를 든다. 영어 첫 알파벳을 엮어 만든 단어들이다.
4S는 동반자(Companion), 날씨(Climate), 컨디션(Condition), 인솔자(Conductor)등 네 가지이다.
동반자(companion)는 아랍에미리트와 아프리카 4국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 그리고 남아공
5개국을 함께 여행한 20명(남6명 여14명)이다. 한 마디로 더 바랄 수 없는 최상의 멤버였다.
말썽 부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세계 수십 개국을 다녀온 여행 마니아들로 매너가 매우 좋았다.
세계 웬만한 나라와 관광지는 대부분 가봤을 정도다. 우리와 콤비가 잘 맞았다.
모두 5팀으로 75세 한 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50-60대였다.
그들은 차나 배를 탈 때 항상 좋은 자리를 우리에게 양보하는 등 깍듯이 대우했다.
그들도 처음에는 우리가 고령이라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자신들과 못 어울리고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까 우려해서다.
그러나 우리가 승차 때나 모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는 등 모범을 보이자 안심하는 눈치였다.
둘째 조건은 날씨(climate)다. 여행 10일간 날씨가 좋아 최상이었다.
백미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명물 테이블마운틴에서다. 전날 서있지 못할 정도로 심했던 강풍이 이날 잔잔해지고 케이블카가 운행돼 쾌재를 불렀다.
이에 앞서 여행한 잠비아와 짐바브웨에서의 빅토리아폭포, 그리고 동물의 왕국 촬영지 보츠와나 초베 국립공원에서의 사파리 투어 때도
날씨가 아주 좋아 관광하기에 최적이었다. 또 첫날 두바이에서의 사막사파리, 세계 최고층 828m의 버즈 칼리파와 7성급 호텔 버즈 알아랍 등을 조망하고
관광할 때도 날씨는 다소 더웠지만 쾌청했다. 이번 여행은 날씨가 우릴 크게 도왔다.
세 번째로 컨디션이다. 여행에 앞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나는 자주 감기 걸리는 체질인데다 출발 몇 개월 전 족저근막염에 걸려 큰 고민이었다.
수없이 병원에 들락거렸다. 양방 한방 가리지 않았다. 족히 30-40회는 주사와 침을 맞았을 것이다.
컨디션이 얼마간 회복됐을 때 의사에게 아프리카여행을 얘기했더니 갈 수 있다고 격려했다. 출발 며칠 전에는 수액주사까지 놔 주었다.
사실 컨디션은 나보다 아내가 더 문제였다. 여행에 치명적인 다리 관절염 때문.
병원에서 수술하라는 걸 미루고 몇몇 개인 병원을 다니며 치료하던 중 이번 여행과 맞닥뜨렸다.
주치의는 아프리카 여행 얘기에 아직 시간이 있으니 치료해보자고 했다.
출발 한 달 전쯤 ”사파리 투어가 많이 걷는 곳이 아니라 갈 수 있다“고 했다. 만일에 대비해 스틱을 가져갔으나 별 필요가 없었다.
네 번째, 4C 중 제일 중요한 인솔자(conductor)이다.
나는 좋은 여행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인솔자라 생각한다. 절한 가이드가 얼마나 많았던가?
나의 수많은 여행 중 엉터리 인솔자와 불친 내 마음에 드는 인솔자는 다섯 손가락에 못 미치고 엉터리 인솔자는 수십 명에 이른다.
그 다섯 손가락 중 첫째는 단연 이번 인솔자다. 현지 가이드도 대부분 친절 자상했고, 협조가 잘 되었다.
40대 중반의 N모 인솔자는 아프리카를 40회나 다녀온 베테랑이었다. 현지 한인 가이드는 물론 아프리칸 가이드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모든 사안을 잘 챙기고 이끌었다. 체격이 탄탄한 미모의 골드 미스로 절제된 리더쉽을 발휘해 일행들을 잘 이끌었고 호흡이 잘 맞았다.
좀 더 부드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럴 경우 자칫 단체를 이끌기 어려울 수 있어 과욕일 것이다.
처음 타본 에미레이트 항공은 전 세계 톱5에 드는 대형 항공사로 맘에 들었다. 인천을 출발, 9시간30분 만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두바이에서는 앞서 말한 세계 최고층 828m의 버즈 칼리파와 7성급 호텔 버즈알 아랍 등을 조망했고, 사륜구동 지프차로 사막 사파리를 체험했다.
멀미가 심한 나는 머플러를 뒤집어쓴 채 모래 위를 마구 달리는 난폭운전을 참아내야 했다.
일행 대부분은 스릴 넘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두바이에서 1박 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까지 8시간30분 걸려 도착한 후 1박했다.
다시 1시간 20분간 비행해 잠비아의 리빙스턴에 도착했다. 토리아 폴의 장엄한 모습을 즐겼다.
자동차로 짐바브웨?보츠와나를 오가며 빅 또 게임 드라이브 사파리?보트 사파리?잠베지강 상류에서의 선셋크루즈 관광 등으로 아프리카의 진수를 만끽했다.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턴은 잠비아 짐바브웨 두 나라에 걸쳐있는 장대한 이 폭포를 발견한 후 당시 영국 여왕 이름을 따
빅토리아 폴(Victoria Fall)이라 명명했다. 마침 건기 때라 수량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짐바브웨 쪽을 먼저 보고 다음 날 잠비아 쪽을 보았는데 후자가 더 웅장했다. 우리 부부는 운 좋게 흑인 가이드가 전속사진사 노릇을 해 실컷 사진을 찍었다.
이에 앞서 보츠와나의 ’동물의 왕국‘ 촬영지 초베 국립공원에서 동물 사파리를 즐겼다.
사륜구동 지프(6-7명 탑승)를 타고 빅5(사자 코끼리 버팔로 표범 코뿔소)를 찾아 숲속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모험이다.
우리는 아쉽게도 보고 싶은 사자를 찾지 못했다. 앞 팀은 운 좋게도 사자를 봤다고 한다.
대신 10여 마리 코끼리 가족과 송아지 크기의 쿠드 세이블 임팔라 등은 많이 봤다.
우리는 귀국 후 동물원에 가 실컷 사자를 봤다.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가 가장 많은 나라다.
13만 마리의 코끼리 숫자를 줄이기 위해 사냥을 허용하기도 했다. 8만 4000여 마리가 살고 있는 짐바브웨는 계속된 가뭄으로 국민 760만여 명이
기아에 직면하자 얼마 전 200마리를 도살해 고기를 나눠 줬다고 한다. 우리는 이 두 나라의 곳곳에서 수많은 코끼리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초베강에서 수십 마리의 버팔로와 악어 가족들, 떼 지어 다니는 임팔라와 뿔이 큰 세이블, 이름 모를 많은 새 떼를 보았다.
강가의 나무들은 코끼리 등쌀에 잘 자라지 못하고 죽어갔다. 우리는 잠베지강에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무한정 제공되는 맥주 와인 환타 등을 맘껏 마셨다. 소위 말하는 선셋 크루즈이다. 배 안의 관광객들은 춤과 노래를 부르며 맘껏 즐겼다.
잠비아에서 묵은 이틀은 낭만적이었다. 모기장 씌운 방에서 모기향을 뿌리고잤다.
창문은 원숭이가 들어와 모자 등 소지품을 날치기(?)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했다. 창문 밖에는 원숭이 몇 마리가 방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호텔은 공기가 무척 맑고 상쾌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수령이 1200년이나 된다고 했다.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는 땅⑨어리가 모두 한반도의 2-3배가 넘는 나라지만 인구는 우리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모두 영국 등 유럽 국가의 식민지였다. 그중 잘 사는 보츠와나는 인구 230만 명으로 최근 다이아몬드발견으로 의료, 교육이 모두 무료란다.
짐바브웨는 독재자 무가베의 장기 집권과 오랜 부패로 1000억 짐바브웨 달러로 달걀 3개를 살 정도로 인플레가 극심했다.
주민들은 1000억 달러 지폐를 미화 1달러에 기념품으로 팔고 있었다. 이는 불법이어서 살까 하다가 포기했다.
이 나라는3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곡식 창고로 불릴 정도로 잘 살았다. 그러나 무가베 대통령이 37년간 독재를 하면서 경제를 망쳐놨다.
2003년 영연방을 탈퇴했고 2009년 자국 화폐를 폐기했다. 그리고 2017년 37년간의 독재를 끝내고 무가베는 물러났다.
우리는 마지막 여정으로 아프리카 속의 유럽이라는 만델라의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방문했다.
아프리카에서 백인이 가장 많이 사는데 도시 곳곳이 무척 아름답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분리정책을 딛고 다양한 인종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나라다.
1488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즈가 발견한 희망봉(실제는 아굴라스)과 테이블마운틴, 보캅지구를 돌아봤다.
또 자카스펭귄이 서식하는 볼더스 비치, 물개들이 가득한 도이커 섬을 돌아보았다.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뽑힌 남아공의 랜드마크 테이블마운틴은 악천후가 잦아 케이블카 운행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55석인 케이블카는 보기 드물게 수 있었다. 360도를 회전하며 오르는데 좌석에 관계 없이 산지사방을 내려다볼 대서양과 인도양이 서로 만나
부딪치는 물살을 한없이 조망했다.
내가 아프리카를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만화 ’밀림의 왕자‘를 보고 나서다.
또 성인이 되어서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본 후 이 대륙을 동경했다.
특히 ’아웃 오브...‘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배경으로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유감없이 보여줘 꼭 이곳을 가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성취했다.